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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과기가 필요하다

https://youtu.be/6KIp7d6Tx8A 정제된 것이 좋다. 무분별하고 난잡하게 늘여둔 생각의 조각들은 이제 더 이상 그리 유쾌하지 않고 거북하다. 많은 고민을 거치고 시간을 할애하며 만든 소산물은 드물게 나오며 우리를 기다리게 할 때도 있지만 즐거움과 감동은 오랫동안 유지된다. 커피를 따를 때에 곱게 갈아 만든 원두도 입에 들어가긴 너무 씁쓸하고 투박하여 인상이 찡그려지듯 우리에게도 여과기가 필요하다. 느리고 가늘게 뽑아진 물줄기는 조밀한 종이를 적셔 한 방울씩, 가루 사이사이 남아 있는 향기를 뽑아내어 한 잔을 채운다. 그런 여과가 필요하다. 머릿속에 있는 부산물을 깨끗이 어딘가에 담아 툭, 하고 가볍게 버린다. 그러고 나면 온전히 좋은 것만 남아있는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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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1.02.03

더 이상 작지 않은 -수정중-

메릴 스트립 필모를 깨볼까, 생각을 하다 작은 아씨들을 봤다.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꽤 즐거웠고 영화는 좋았다. 이상하게 나는 영화에는 박하다. 누군가 나에게 인생영화가 뭐예요? 라고 물으면 꽤 오래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다. 지금까지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걸로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정도. 항상 지적이고자 하는 욕망 덕에 무언가 쉽사리 감명받기가 참 힘들다. 좋다는 감정은 머리에 오는 것이 아닌데. 작은 아씨들의 다른 영상물은 본 적 없지만 어릴 적 꽤 좋아했던 소설 중 하나이곤 했다. 그 때엔 그냥 예쁘고 사랑받는 사람이 좋아서 큰 딸 매그가 가장 좋았다. 그 때나 지금이나 매그가 무도회에서 칭송받는 것을 부끄러워 하고 숨기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. 에밀리가 매그만큼 클 때의 시간이 지나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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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1.01.11

눈이 녹는 온도

제목을 정하는 건 가장 힘들다. 제일 무난한 건 0102. 라고 숫자를 적기. 원래 내용을 압축하는 것은 가장 힘들다. 누가 그랬지, 나이가 들면서 짧은 글 적기가 더 힘들어진다고. 창문을 열어 고개를 내밀어 보면 평소 보지 않던 곳이 보인다. 이 집에서 일년을 가까이 살았는데 지난 달에서야 고개를 내밀고 기웃거리면 초밥 트럭이 왔는지 보이는 것을 알았고, 오늘에서야 뜨거운 물을 사용하면 보일러가 돌아가서 굴뚝에서 연기가 마치 구름에 중력이 생긴 것처럼 내린다는 걸 알았다. 굴뚝이라는 사물은 참 오랜만이다. 보일러라는 건 시골이라는 느낌, 그런 분위기를 찾아볼 수도 없는데 굴뚝은 어쩐지 주변에 잘 없을 것 처럼 느껴진다. 그래도 누군가 불을 지피면 연기가 나니까 굴뚝은 필요하다. 연말에 내린 눈은 아직도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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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1.01.02

0으로 끝났던 해의 열 두 번째 달의 일기

친구의 일기를 보고 갑자기 또 새해 맞이 일기를 늦장 부려 적고 싶어졌음 양식도 완전 파쿠리니 원작자 분이 요청하시면 글은 내려갑니다. 12 / 1 탕볶밥을 먹었다. 학교 근처는 배달이 싼 곳이 종종 있어서 좋다. 영업시간도 여는 날짜도 제맘대로지만 먹고싶을 때 이만한 게 없다. 요즘은 한그릇 배달료 안 받고 배달해주는 동네 중국집이 참 소중해. 맛은 그냥 남이 차려줬다 생각하면 괜찮은 정도. 국물과 반찬은 항상 버려서 빼달라고 한다. 취향 맞추기 픽크루가 유행했다. 12 / 2 샐러드 파스타를 했다. 지금은 추워서 별로 생각나지 않지만 종종 먹으면 맛있다. 미즈 컨테이너 하고 비슷하려나 - 하고 생각했는데 레시피 알려준 지인이 비슷하다고 했다. 가성비 있는 강남 방문 추석에 받은 리챔 + 참치 세트를 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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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1.01.02

TEST

저는 우정리에서 제법 먼 마을에 와 있습니다. 1월부터 시작해 지역을 떠돌아 다니며 이어 온 글쓰기 수업을 끝내는 날이거든요. 이전까지는 종이와 활자를 이용해 만들던 텍스트를 눈빛과 목소리, 손짓에만 의지해 현장에서 지어내는 새로운 시도였어요. 책보다는 강연이 유투브를 통해 게임 맵 위에서 시각적인 텍스트를 즉각즉각 구현해 나아가는 자빱님 작업과 닮은 데가 많은 듯해요. 그렇게 만들어냈던 순간들은 모두의 눈앞에 나타났다가 금세 휘발되고, 지역을 옮기는 동안 변화한 시간을 반영한 뒤 또 나타났다가 휘발되고. 그 휘발됨이 이제까지는 애틋하면서도 후련했는데 두시간 뒤 마지막 지역에서의 마지막 수업을 하고 나면 그 다음 기회가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할 시간이 왔는지 허전해서 서글프네요. -이민경, 코로나시대의 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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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1.01.01